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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경쟁해야 합니다.

2 주전 있었던 교황의 방한을 바라보는 한국 개신교계의 엇갈린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교파와 신학의 다양성을 갖고 있는 개신교이기에 이번 교황 방문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으로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비난이나 반대로 인해 국빈으로 온 교황의 방문 자리에서 천주교는 이단이라고 소리치며 소란을 피우는 광경을 접하며, 아무래도 교우들에게 천주교회를 대하는 우리 개신교회의 입장(특별히 감리교회)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이단과 정통을 세 가지 기준을 갖고 구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인정하는 것과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것, 그리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 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신교와 천주교는 이 세 가지의 신앙고백이 일치됨을 보이고 있고, 이점에서 감리교회는 천주교를 ‘분리된 형제’로 여기지, 기독교의 이단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천주교의 다름을 결코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개신교의 이름 자체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즉, 저항자, 항의자란 뜻인데, 이는 중세 천주교의 세속화와 성경을 벗어난 교리로부터 항의와 저항을 하며 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교리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아마 ‘성모 마리아’ 신앙일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사람 이상의 ‘하나님의 어머니(聖母)’라고 격상시키며, 마리아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복을 주는 하나님으로까지 우상화시킨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는 성경적인 교리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 부분을 보수적 개신교회에서는 로마의 여신숭배 사상의 연장선에서 나온 마리아 숭배라고까지 주장하며, 천주교회의 이단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제가 행하는 미사와 고해성사가 구원의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부분도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신학적인 차이점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단과 정통의 큰 기준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인정, 삼위일체 교리,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안에서 이러한 차이점은 신앙의 관점의 차이이며,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감리교회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엄청난 대중적 인기로 인해서 가뜩이나 추락한 개신교회의 이미지와 비교하여 앞으로 천주교의 부흥과 개신교의 쇠락을 예측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분간 한국에서 천주교회의 성장세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개신교가 천주교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않습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천주교로 인해서 개신교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에 의한 개신교의 개혁운동이 중세의 천주교회의 개혁에 도전을 했던 것처럼, 가난한 자와 고난 받은 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낮은 데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행보는 지금의 개신교회를 향해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라는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구교(천주교)와 신교(개신교)의 두 날개가 사랑실천으로 이 땅에서 건강하게 펼쳐질 때 주님의 나라는 땅끝까지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교인 수와 큰 건물과 재정과 교리 가지고 하는 경쟁은 교회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서로 경쟁하려면 누가 더 예수의 사랑을 잘 실천하는지, 누가 더 예수의 십자가 향기를 진하게 퍼트리는지, 이 사랑경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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