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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주의에서 벗어나는 교회

몇 주전 청년들과 갖는 주중 성경공부 모임에서 한국교회 목사에 대한 가슴 아픈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둘 중에 하나가 아닙니까?

큰 교회목사나, 큰 교회 목사가 되고 싶은 목사”

요즘, 한국에서는 기성 교회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간 교인들 중에 “가나안(?)” 성도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교회 “안나가” 라는 말을 거꾸로 써 가나안이라고 부르며, 특히 청년층에서 이러한 가나안 성도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달 전부터 이 지역의 이런 가나안 청년들 몇몇이 교회는 나오고 싶지 않지만, 성경공부는 하고 싶다고 부탁하여 주중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신앙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이들과의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하는 말인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청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한국교회의 목사의 한 사람인 저로서는 목사에 대한 이런 신랄한 비판을 듣고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래도 나는 아니지” 하고 강한 자기 부정을 해 보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의 강한 부정은 점점 강한 긍정으로 이러한 비판에서 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0대 초반부터 교회개척을 시작한 저로서는 한 동안 교인 수 늘어나는 재미(?)로 목회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개척 10년 만에 3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하였을 때에, 주변에서 능력 있는 목사라고 추켜 세워줄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은 하면서도 내심 불어난 교인 수와 커진 교회의 규모에 흐뭇했었습니다. 그런 당시의 저의 태도는 교회의 외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공격하였고, 의견이 맞지 않는 교인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교회에서 분리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강한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로 항상 앞장서서 철야를 하고 나를 따라오라고 늘 교인들을 재촉했었던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처럼 제 인생에서 가정 생활이 힘든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교회에 매달려 살았기 때문에 아내의 불만은 아랑곳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조차도 돌아볼 여력도 없이 오직 하나님 일이라는 명목으로 교회 성장에 올인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누구보다도 그 성장에 대한 허상을 알기에 이제는 교회의 건강하지 못한 성장주의와 성공주의에 대하여 경계하게 되어, 성장보다는 건강을, 성공보다는 성실을 신앙의 기본이라고 붙들게 된 것입니다.

‘현존하는 미래’라고 하는 청년들과 매주 만나면서, 지금의 왜곡된 교회와 목사의 자아상을 직시하게 됩니다. 가나안 성도들을 교회에서 몰아낸 교회 안의 성공주의라는 괴물과 맞서 싸워야겠다는 다짐을 매주하고 있음은 적어도 두 부류에 속하지 않는 목사는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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