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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왜 이럽니까?”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많은 분들께서 목사인 저에게 이렇게 하소연 하십니다.

“교회가 왜 이럽니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 편가르고 반목하며 서로에게 미움의 화살을 쏘는 것에 속이 상해서 하시는 말입니다. 정말 교회는 왜 이럴까요?

아름다운 교회를 떠올리게 될 때 우리는 사도행전 4장에 나오는 자신들의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한데 모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며, 매일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교제를 나누던 초대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그 초대교회의 아름다움은 곧바로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성도간의 시기와 반목이 어느 사이에 끼어들어와 은혜와 사랑의 공동체를 흔들어 놓아 심한 혼란에 빠지게 됨을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사도행전 6장에는 교인들이 많아지면서 구제하는 일에서 히브리 말을 하는 사람들과 헬라 말을 하는 사람들과의 파워게임으로 인해서 사도들 조차도 겉잡을 수 없게 되자, 급기야는 7명의 새로운 집사들을 서둘러서 뽑게 되는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이렇게 분란과 갈등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특별히 문제가 많아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서 갈등과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해야 할 소망인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분명한 것은 어둠의 권세로부터의 방해와 공격은 처음부터 끊임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간의 분란과 문제에 쉽게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왜 교회가 이럽니까?”라는 질문만 하지 말고, 교회의 분란과 문제를 이기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의 집요한 공격을 이기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모욕을 당하시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며(벧전 2:23)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렇기에 교회가 문제를 만날 때, 똑똑한 세상의 방법이 아닌, 바보 같은 예수 십자가의 방법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저부터 먼저 바보가 되어서 이 문제를 품으며 십자가를 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기회가 교회개척을 앞에 둔 우리에게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기 위한 우리의 진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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