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3-27)

이제 부활하고 싶습니다.

길었던 40일의 신앙 여정을 마치고 맞이한 부활절이 예년과 달리 간절했던 것은 우리의 처지와 상황이 그만큼 어둡고 힘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순절 내내 저의 기도는 “주님, 우리의 모든 사역에서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를 부활시켜주십시오.”였습니다.

목회자 파송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공동체는 서로간의 의견차이로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언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 과정에서 교회를 떠나신 분들까지 있을 정도의 아픔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목회자가 이번 여름, 새로운 파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받아 드려야 할 현실이며, 이 상황을 직시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모두가 주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내려놓음과 순종의 자세를 보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렇기에 사순절 내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이 어둠의 터널을 걷고 또 걸었던 것입니다. 이제, 서서히 그 깜깜했던 어둠의 터널 끝자락에 이른 것 같습니다. 결국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과정을 온전히 걷고 나서야만 부활의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소망이 우리 센터빌 교우들과 교회의 모든 영역과 사역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유안진 시인의 ‘내 믿음의 부활절’이란 시가 2016년 부활절을 맞이하는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내 믿음의 부활절

지난겨울
얼어 죽은 그루터기에도
새싹이 돕습니다

말라 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에서도
분홍 꽃잎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저 하찮은 풀 포기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나님
죽음도 물리쳐 부활의 증거 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마음
말라 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 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 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3-20)

끝까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

이번 주간, 2016년 고난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매년 사순절, 40일 신앙여정의 마지막은 고난주간으로 마무리 하게 되는데, 당연한 이유이지만, 사순절의 끝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별히 금년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이 담긴 사복음서를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복음서의 종착점은 결국 예수님이 끝까지 걸으셨던 십자가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함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본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그 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었고, 자신의 힘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에 사로잡히기만 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사람에게조차 십자가의 길은 세상의 기준과는 너무도 다르기에 험하고 좁은 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교회는 금년 여름에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바뀌어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 고난주간은 교회를 위한 특별 중보기도를 성도 여러분들께 부탁 드립니다. 간절함의 표시는 어쩌면 금식이기에 가능하신 분들은 하루 한끼 금식하시며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에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길은 오직 성도들의 눈물과 땀의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 중에 교우들 모두가 교회를 위한 십자가를 내가 지겠다는 새로운 결단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제말기, 민족고난의 시기에 조국의 십자가 앞에서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결국 그의 시가 그의 고백이 되어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를 다시 읽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새롭게 되새기는 이번 고난주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십자가(十字架)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3-6)

Tags

더 걸어야 할 십자가 길

어느덧 사순절, 40일 신앙여정이 절반을 지냈습니다. 2월의 매서운 추위로 시작하여, 훈훈한 봄의 기운을 느끼는 3월로 접어 들었습니다. 부활절을 기다리며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에게 이 40일의 신앙여정은 분명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경험해야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요즘 복음서를 계속 통독해 가면서 예수님의 사역의 끝이 어디인지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은 오직 한 곳, 즉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이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묵묵히 전진해 나가시는 예수님에게 적대자들의 수많은 음모와 유혹과 방해 그리고 군중들의 환호와 인기도 결코 막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기 위해 예수님은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셨음을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20일 남았습니다. 우리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남은 고난과 어두움의 길을 향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님은 우리를 이끄시는 것 같습니다. 이 길을 다 걸은 후, 우리는 찬란한 부활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임영조 시인의 ‘삼윌’이라는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삼월의 설렘과 부활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인 것 같아서 계속 읽게 됩니다.

삼월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 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본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17)

이런 일꾼들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2016년을 맞으며, 우리 교회의 집사와 권사의 직분을 감당할 신천. 이명 임원 임명식과 취임식이 있는 날입니다. 어려운 우리 교회의 상황에서도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신천 집사로 또는 이명 집사와 권사로 임명 받고 취임하시는 여러 임원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는 일은 성경적으로 구약과 신약에서 그 의미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모세가 혼자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느라 피곤하여 정작 광야에서의 행군에 지장을 받게 되자, 이를 본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나서서 재판을 함께 나누어서 할 수 있는 백부장과 천부장을 세우게 하여 리더십을 나누게 한 전통이 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초대교회가 갑자기 늘어난 성도와 사역의 규모로 인해서,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선한 구제사업이 불평과 불만 등의 잡음이 끊이지 않게 일어나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케 하고, 7명의 집사들을 뽑아 음식을 나누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오늘날 교회가 직분자들을 세워서 사역에 동참하게 한 신앙적인 이유라 할 것입니다.

금년에 새롭게 임명되는 임원들의 특징으로는 영어회중과 한어회중에서 한 커플씩 신천집사가 임명 받게 되었고, 그 동안 정식으로 이명절차를 밟지 않았던 10명의 집사님들이 이명과정을 모두 마쳐 정식으로 우리 교회의 임원이 되셨다는 것과, 작년 말 운영위원장으로 섬기고 계신 한의홍 권사께서 이명절차를 마치고 정식으로 권사에 취임하게 되셨다는 것일 것입니다.

바라기는 교회 독립의 과정을 목전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 새롭게 직분을 받게 된 임원들이나 이명절차를 모두 마치신 임원들이, 기존의 임원들과 한 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위한 수고와 섬김에 시너지 효과를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임원들 모두를 위한 기도문을 실어봅니다.

이런 일꾼이 되게 하소서   

낮은 곳에 처해도 불평하지 않으며

높은 곳에 올라도 교만하지 않으며

가진 것이 없어도 짜증내지 않으며

많은 것을 가져도 게으르지 않으며

앞장서 서 일해도 자만하지 않으며

뒤에 처져 있어도 낙심하지 않으며

아는 것이 많아도 판단하지 않으므로

더 많이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10)

왜 성경일독을 강조합니까?

새해도 벌써 열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 교우 분들께서 매일 성경을 읽으시느라고 예년에 비해 하루가 분주해졌다는 말씀을 듣게 됨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 스스로도 아침이든, 저녁이든 교회 달력에 나와 있는 그날의 성경 본문을 확인하며 하루 읽어야 할 성경본문을 읽게 되는 것이 이제는 생활 습관이 되어 약간의 부담과 함께 지난 일주일간 창세기 전체의 흐름을 갖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는 영적 만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경일독이 금년 목회의 목표임을 나누게 될 때 몇몇 교우 분들께서 공통적으로 이런 질문은 해 오십니다.

“왜 성경일독을 그렇게 강조하지요?

성경은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는 깊이, 자세히 읽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성경을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절이라도 깊이 자세히 읽어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에 그 질문에 항상 저는 긍정적인 답을 먼저 해드리게 됩니다.

“물론입니다. 성경이 주는 유익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삶의 변화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성경을 더 깊이, 더 자세히 읽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많은 성경 구절 중에서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 한 구절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와싱톤한인교회가 2016년을 시작하며, 강조하는 전교인 성경일독은 성경을 무조건 많이 빨리 읽는 것을 강조하거나 자랑하려는 것이 절대 아닌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단지 교회멤버(Member)에서 예수의 제자(Disciple)로 자라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말씀의 공급을 받는 일인데, 그 말씀을 스스로 받게 하기 위하는 훈련이 성경 66권, 전체를 알고 있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숲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서 성경일독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숲을 볼 수 있어야, 그 숲 속 어딘가에 내가 필요한 나무 열매가 있는지, 마실 수 있는 샘물이 있는지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희 목회실은 가능한 한 많은 교우들께서 이번 성경일독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노란색 성경일독 가이드 북을 활용하시든지, 매일 교회달력을 활용하시든지, 토요일 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그 주간에 읽으셨던 성경본문의 중요한 주제들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교우들을 생각하며 시작한 성경일독 프로그램이지만, 열흘이 지난 지금 저 개인의 영성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새삼 확인하게 되어, 연초에 한번 강조하고 그칠 것이 아님을 더욱 다짐하게 됩니다. 혹시 아직 시작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부터 출애굽기 1장에서 4장까지를 읽으시며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평생 기억되실 소중한 신앙생활의 경험이 되실 것입니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03)

기도와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

2016년, 丙申年(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감이 좋지 않아서 쓰기가 뭐하지만, 금년은 붉은 원숭이 해로, 특별히 창조와 지혜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 동안의 정체되고 막혔던 모든 것들을 시간의 저편에 묻고 희망의 새해를 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금년, 우리 교회가 걸어가야 할 한걸음 한걸음은 아마 이전까지 우리가 걷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과의 관계라든지, 교회의 여러 구조적인 변화를 겪어야 하는 때로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맞이해야 하는 팍팍한 광야와 같은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광야에서 그들이 목마름과 배고픔 앞에서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풍성하게 하심을 동시에 경험했던 – 생수와 만나의 기적을 맛본 – 은혜의 현장이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목회실에서 2016년 교회표어를 ‘기도와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라고 정하게 되었습니다.

“급할수록 천천히”라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교회의 존재이유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무리 교회 상황이 급하여도 우리의 가야 할 길을 기도와 말씀에 전념함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금년 교회표어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열매가 나올 수 있도록 두 가지의 실제적인 목표를 정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성도가 되자’와 ‘전 교인 성경일독’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입니다. 바라기는 지금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합심기도의 자리(주중 새벽기도, 금요 찬양기도, 토요 새벽예배)를 조금 더 많은 성도들이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와싱톤한인교회의 목표이기도 한 전교인 성경 일독을 우리 모두가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지금껏 확인하였습니다. 오직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워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교회를 세워가시는데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된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만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와 말씀의 자리를 열심히 지키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우리의 생각과 야망으로 만들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선하신 뜻에 맞추어져서 세워지는 아름다운 교회로 든든히 세워져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금년 한해 기도의 자리에서, 말씀의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늘 만나 뵙겠습니다.

Blessing, Happy New Year!!!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1-22)

우리에겐 꽃이 있단다!”

2 주전, 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로 온 세계가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있습니다. 서방국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기회에 공공의 적인 IS(이슬람국가) 테러집단을 소탕해야 한다고 연일 폭격과 보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속한 IS는 세계 곳곳에서 계속해서 이 같은 잔악한 테러를 저지를 것 같아,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는 더 번져갈 기세입니다.

감사가 넘쳐야 할 추수감사절에 이렇게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러는 중에 언론에 보도된 프랑스의 베트남 이민자 부자(父子)의 이야기가 테러와 폭력에 더 큰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에 신앙인은 어때야 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번 파리 테러에서 가장 큰 희생자가 발생한 바타클랑 극장 인근에서 베트남 출신의 이민자인 아버지 앙줄과 아들 브랑동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는 중에 방송 리포터가 다섯 살 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있니?”

브랑동은 “네, 엄청 나쁜 사람들이 아주 못된 짓을 했어요. 우리는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할 필요 없다.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돼. 프랑스가 우리 집이잖니”라고 말해 줍니다.

아들은 “나쁜 사람들이 총으로 우릴 쏠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 다시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는

“그들에게는 총이 있지만 우리에겐 꽃이 있다”며 추모객들이 놓고 간 수많은 꽃과 초들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아들이 “하지만 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나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저 꽃들은 총에 맞서 싸우는 거야”라고 답해줍니다.

잠시 꽃을 바라본 아들은 “꽃과 촛불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요”라고 방송 리포터에게 말한 뒤 환하게 미소 지었다고 합니다.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보복은 더 큰 보복을 낳을 뿐입니다. 아마도 서방세계가 엄청난 공격용 무기와 폭탄으로 IS 지역을 공격하면 할수록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슬람 권의 피해자들은 더 큰 미움과 분노로 무장하여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서 자살폭탄이 되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지하드(성전)의 전사가 되어갈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해진 모든 미움과 폭력을 끊어버리신 예수의 십자가만이 인류구원이요 생명의 길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테러집단의 미움과 분노의 광기 속에서 피로 물든 추수감사절을 맞고 있는 2015년 세상에서,

오직 예수의 십자가가 정신으로 우리 삶의 자리에서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 된 자들을 품는 일로 사랑의 꽃을 피우려는 사랑의 공동체가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0-18)

Tags

기다림이 깊을수록

한창 가을야구가 흥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야구는 제가 유일하게 긴 시간이라도 끝까지 지켜보는 스포츠 종목으로 힘들어도 한 달에 한번은 좋아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꼭 챙겨 보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작전과 변수 그리고 의외의 반전을 즐기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정착한 지역이 자신의 제2의 고향이 되듯이, 저 또한 25년 전 미국에 처음 와 정착했던 시카고가 저의 제 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카고의 야구팀인 Cubs의 팬이 되었지요.

Cubs 팬들은 100년의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월드시리즈를 우승을 보지 못한 저주 받은 팀의 불행한 팬이라는 조롱을 스스럼 없이 받아 들이는 내공(?)을 갖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시카고 사람들의 농담 중에서 “시카고 컵스가 우승할 때까지만 사십시오.”라는 말이 덕담으로 사용되기까지 하겠습니까? 정확히 107년 동안 우승을 해보지 못한 야구팀을 향한 컵스와 컵스 팬의 사랑은 어찌 보면 숙명과도 같은 사랑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금년 가을, 그렇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카고 컵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노릴 정도의 실력을 보이며 팬들을 잠 못들 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지역 우승을 차지한 후 팬들이 얼마나 감격해 하는지, 그 열광이 마치 월드시리즈를 이미 우승한 것처럼 밤새 거리를 행진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고 하니 10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승에 대한 기다림의 깊이가 눈 앞에 보이는 희망 앞에서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같은 Cubs 팬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말에 제가 20년 전에 개척하여 14년을 섬겼던 일리노이주 어바나-샴페인에 있는 예수사랑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오게 됩니다. 뒤돌아보니 그곳에서의 시간들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다림’이라는 말로 표현하게 됩니다. 한 명의 교인을 기다리기 위해서 반년이라는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하였고, 새벽기도를 함께 할 사람을 얻기 위해서 1년의 시간을 기다렸으며, 10명의 교인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2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기다림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꿈만 같았던, 기드온의 3백 용사와 같은 제자 3백 명을 양육하겠다는 기도가 드디어 이루어지기까지의 그 지루할 정도로 반복했던 100번이 넘는 제자훈련의 시간들, 바로 기다림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우리는 깊이를 더해가고, 진정한 사랑을 또한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금년 가을, 107년의 우승과 우리 센터빌 캠퍼스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가 기쁨과 감격으로 다가오기를 또 기다려봅니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0-11)

Tags

십자가 공식’으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윤동주는 ‘십자가’라는 시에서 십자가에 오른 예수를 ‘괴로웠던 사나이’, 그러나 ‘행복한’이라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교 수학문제는 사지선다형이 아닌 시험지에 문제를 푸는 과정을 모두 쓰게 하는 서술형이었습니다. 수학에 약했던 저로서는 이런 유형의 문제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녔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서 ‘정석 수학’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꼼수를 동원하며 답을 찾아내던 저에게 그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모든 과정을 풀어가며 답을 도출해 내는 것은 당연히 힘든 것이었습니다.

서술형 수학문제의 답안지 채점은 답을 맞추었느냐, 아녔나 에 있지 않고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래서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공식을 바로 적용하였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공식을 맞게 적용하여 문제를 풀었다면, 간혹 숫자 계산의 오류가 발생하여 정답이 잘못 나왔을지라도 그 문제를 이해했으므로 후한 점수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기도의 자리에 더 머물게 되면서, 기도 중에 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공식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일반화 되었기에 오히려 자주 잊어 버리는 신앙의 공식인 십자가를 다시 붙잡게 됩니다.

이 땅의 성도들은 모두가 인생을 살면서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꼼수로 푼 시험지가 아니라 신앙의 바른 공식인 십자가로 하나하나 풀어간 답안지를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이 ‘십자가 공식’을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입할 때마다 우리는 겪어야 할 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겪고 난 후 풀린 문제로 인해서 우린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분이 맞이했던, 외로움, 목마름, 절망……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행하셨던 그분의 용서, 중보의 간구, 내려놓음……

이것이 십자가 공식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십자가로 괴롭지만,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목회칼럼 – 센터빌에서 쓴 편지 (10-4)

Tags

풍성한 기도의 자리에 초청합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일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인 10월입니다. 다른 것에 분주하여 소중한 기도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거친 풍랑이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해 이번 10월에는 꼭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가을에 우리교회에 기도의 자리가 풍성하게 마련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고 기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마 21:113)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교회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역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가을에 펼쳐지는 풍성한 기도의 자리에 교우 여러분들을 초청합니다.

  • 학부모 기도회

매달 첫째, 셋째 토요일 6-9 pm, 어린이 예배실(213, 215호실)에서 학부모 기도회로 모이게 됩니다. 이 시간 Youth Group의 FAT 모임 중에 학부모님들이 기도회로 모이는 것은 부모와 자녀의 신앙을 함께 자라가는 One Church의 비전을 이루어 줄 것입니다.

  • 찬양과 기도의 밤

매주 금요일 8-9 pm, 찬양을 중심으로 기도를 이어가는 금요일 밤의 찬양과 기도 모임입니다. 찬양은 기도의 문을 열어주는 은혜의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찬양으로 충만하여지는 찬양과 기도가 어우러지는 금요일 밤의 기도회입니다.

  • 주중 자율 새벽기도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 새벽 5:30-6:30 am, 직장과 가정 일에 분주한 주중이지만, 자율적으로 이 시간에 예배당에 나와 자유롭게 기도하고 돌아가는 새벽 기도입니다. 교회 안전문제로 한 시간 동안만 교회 문이 열리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토요 새벽기도회

매주 토요일 새벽 6-7 am, ‘기쁨의 언덕’ 묵상 집의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 함께 교회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새벽기도회입니다. 특별히 토요일 새벽기도회 후에는 7-7:30 am 에, 2층 사무실 앞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 나누는 식탁의 교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역대하 7:14)